본문 바로가기
생각

[생각] 배척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by 죠옹 2017. 7. 19.

 배척과 수용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뗄레야 뗄 수 없는 고민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민, 특히 외국인들을 배척할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⑪ 외국인 혐오증은 진화적 본성이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8944&utm_source=fb)

 낮선이를 경계하고, 자기 집단과 나라를 더 사랑하는 것이 진화적인 습성이라는 해석과 함께,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내집단 선호 습성을 버리고 낮선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며,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하리라" 라는 주장을 하는 글이었다.

 급변하는 시대에서는 우리의 유전자가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게놈지연" 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며, 내집단 선호는 이와 같은 게놈지연에 해당한다는 관점이다. 외국인을 배척하기 시작한 미국과, 외국인들을 끌어오려는 중국의 향후 행보는 재미있는 관점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저자는 복잡해진 현시대에서 "수용"을 선택하는 것이 더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통찰을 하고 있다.


 인간이 이렇게 배척과 수용에 생각하게 된 것의 기원에는 "폭력"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삼국지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좋은 성을 한채 갖고있었다. 식량도 나고 살기에 딱 맞춤이었다. 그런데, "폭력"이 발생한다. 다른 성들의 사람들이 세력을 키워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살수가 없다. 혹은 "종류가 다른 폭력"도 발생한다. 메뚜기떼가 우리 성에 돌아 자원이 부족하게 되어 사람들이 죽게 된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적들로부터 성을 지키기 위한 병력을 얻기 위해 다른 수많은 성을 차지하고 병력을 모아야 하며, 메뚜기 떼가 돌아도,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지역의 논밭을 확보해야한다. 이처럼 내 삶에 불안을 조장하는 수많은 "폭력"들은 우리를 불안함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커다란 조직으로 발전해왔다. 사실, 이렇게 인간의 삶에 불안을 조장하는 "폭력"이 없다면 굳이 누군가를 받아들여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욕구와 안전이 보장되는 꿀이 마르지 않는 세상이 있다면 굳이 조직을 이루려는 인간의 사회성이 발달하였을지 의문이 든다.


 세계화는 사실 이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쳤던 것은 마치 내가 삼국지에서 내 성 하나만 가지고 잘 먹고 살겠다는 생각과 같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게임에서 처럼 타국의 수많은 문화와 기술 병력으로부터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현재 세계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국가간 장벽이 많이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의 이익을 위한 신경전이 오가는 시국이다. 게다가 각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정치인들과 수장의 선출은 국가 내부적 투표를 통해 이루어 지기 때문에,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선출되어진다. 이는 각 국가간의 신경전이 사라질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이다. 세계화와 국가주의 민족주의 간의 간극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간의 연합이나 세계정부의 필요성이 대두되어지는데, 이 또한 내부적 이해관계에 의해 와해되거나, 불만이 발생하기 쉽상이다.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불안을 조장하는 "폭력"들에 대한 제어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안정된 사회를 갖추기 위해 자원적, 과학적, 정치적인 안정이 필요하다. 자원적, 과학적 안정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안함을 줄이는 관점이며, 정치적 안전은 현 인류가 갖고 있는 한계 내에서 도의적으로 나누고자 하는 관점이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하리라"라는 말은 나와 내 집단을 침략하고 무너뜨리려는 의지가 없는 자들에게 길을 내줄 때의 이야기이다. 강자는 약자를 착취해서는 안되고, 약자 또한 도움을 받기만 하려는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배척과 수용은 한계적 자원과 생명적 불안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취하는 관점이며, 이 기저엔 항상 "불안" 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초점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성을 쌓을 것인지 길을 내어줄 것인지와 같은 선택에 관점을 두는 것보다, 그 원인인 "불안"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류-인류간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도의적 관점의 중요성과, 인류-자연간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자원적, 과학적 연구가 활발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지금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구성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