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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생각] 그래도 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

by 죠옹 2018. 7. 21.

 근래 주위에서 형성되는 이상한 기류를 느끼며.. 이것이 주기적으로 오는 의례적인 상황인 것인지, 위기 일발 직전의 상황인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다.


 장사꾼들은 공장으로 인해 물이 오염되어 마실 물이 없어지면, 마실 물을 생산하는 공장을 만든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허나, 이런 우스갯말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우스갯말 속에 시장경제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뼈있는 비판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행위의 배경에는 "그래도 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세상 이곳저곳에서는 수많은 의견 합의를 통해 "그래도 되면" 이라는 기준을 정해가고 있다. 문제는 "그래도 되면"이 항상 올바르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옳은 의견 합의가 이루어질 순 없지만, 문제가 되는 경우는 완전히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특정 사람이나 단체의 "그래도 되면"이라는 기준은 본디의 의도와는 다른 괴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을 수 있다.


 난 이상주의자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들에게서 현실은 다르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는데,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허나, 현실은 다르다는 말은 주로 "지속가능성"을 염두한 말이다. 현실 속에서 지속가능성은 늘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현 시스템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말이기도 하다.


 최근 이와 같은 일을 겪었다. 이 사람의 당연한 듯이 뒤틀린 신념은 당연한 듯이 나에게 그 신념에 따르는 것을 요구했다.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요구가, 그와 그를 둘러싼 시스템 속에서는 "그래도 되는" 요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그래도 되는"의 기준은 그를 둘러싼 시스템 속에서의 "지속가능성"을 뿌리로 두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지속가능성의 힘이란 엄청나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그를 욕할 것인가 그가 이렇게 행동하게 만든 시스템을 욕할 것인가, 욕해서 무어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된다"는 꼭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경계선을 제시할 뿐이다. 이를 보란 듯이 이용하며, 합의된 옳고 그름의 경계선에 서서 무죄를 주장하는 자는 아주 몰지식한 범죄자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멋 대가리가 없다. 이들의 마인드 속에는 "이상적인 세상"이 없다. 그냥 그래도 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스템의 적극적인 이용자이며, 가장 큰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지만, 시스템의 매력을 망치고 결국에는 시스템을 경직 시키고 붕괴 시키기도 한다.


 요즘 사회문제의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각기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각자의 프레임을 구축하여 상반되는 집단과의 경계선을 조정하는 전투를 벌인다. 문제점은 그들에게 이 경계선은 더 이상 "최소한"의 약속이 아니다. 그들이 정한 경계선 자체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항상 경계선에 집중하는 자들, 그래도 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경계선이란 경직된 약속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모든 이들에게 항상 옳은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 모든 배경에는 지속가능성이 있다. 현 시대의 지속가능성에는 항상 자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굳이 이상적인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는 이러한 지속가능성의 방향이 비뚤어 지지 않도록 팽팽히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지만, 항상 논의는 그 경계선의 정의에 놓여있다. 이는 프레임 전쟁의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


 행복에 관한 논문들 중에는 "의도적 행위"가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의도적 행위"는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어떻게 보아도 이는 위에서 논해 왔던 "경계선"과는 거리가 멀다. 경계선은 우리의 지향점이 아니다. 경계선은 다만 최악을 막기 위한 기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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