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메시지를 듣다 보면 문득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사실 성경의 메시지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도덕성과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을 위해 기도 하라', '큰 동기를 느끼고 눈 앞의 시련을 이겨내라' 하는 성경의 메시지들은 사실 그렇게 새롭지 않은 메시지들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이 왜 그렇게 까지 와 닿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들어 본 지 꽤 된 것 같다.
착한 사람은 어디서 당하고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남을 돕고 사는 사람들은 미련한 취급을 받는다. 거창한 큰 꿈을 이야기 하는 것에는 창피해 하지만, 확실한 작은 것들을 이야기 하는 것에는 당당하다. 남이 하면 존경의 마음이 생길지언정 내가 하면 손해 보는 것 같다.
이상적인 세상에 앞서 실현 가능한 방법이 우선하며 생긴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우리의 사고를 현실이라는 세상에 가두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당연한 건데도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남을 돕기 이전에 얻을 수 있는 것을 따져보게 되고, 해야 할 것들을 찾기에 앞서 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 짓는다.
예전에는 하느님이 일하신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 못할 뿐만 아니라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하느님이 무슨 힘이 있어 세상을 바꾼단 말인지. 전지전능하다면 왜 처음부터 완벽한 세상을 만들지 않았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의 실존 여부를 떠나 그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완벽한 존재와 완전한 이상을 믿는 사람들은 이상을 위해서 현실을 뛰어 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상적인 세상에 현실이 문제라면 과감히 바꿀 수 있으며, 때로는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은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데 기여해 왔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성공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물론 좋아지는 과정은 이상적인 세상과 실현 가능한 방법의 중간 지점에 위치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에서 보다 이상적인 이야기에서 감정이 동요하는 것은 내 속에 이상적인 세상이 그만큼 작게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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