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직장접종이란 경로로 학교에서 백신을 맞았다. 모더나 백신이었는데, 하루 이틀 어깨 근육이 뻐근하고 살짝 열이 난 정도.
그런데, 접종 다음날 오전 원래는 3일간을 예정으로 하던 직장 접종이 긴급 정지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나는 1일째에 맞았기 때문에 맞을 수 있었는데, 갑자기 중지가 되었다니 무슨일이라도 났나 싶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설명 메일이 도착했다. 1일째에 학교에서 접종한 백신과 동일한 제조단위번호(LOT)의 백신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어서 조사한 결과 백신 제조 공정 중 기계 접촉부의 마모로 스테인레스 조각들이 혼입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후생성(일본의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눈으로 보아 주사액에 변색과 이물질이 보이지 않으면 사용하도 괜찮다는 연락이 있었기에, 접종을 다시 개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를 받기 까지의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원인을 눈치챈 시점에서 알리지 않았다.
물론, 일반인들이 원인을 알았다고 하여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란을 조장할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권리는 중요하다. 오전에 접종을 갑자기 중지한다는 메일을 읽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심각한 부작용자가 나왔다거나, 접종 스태프 중에 감염자가 나왔다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고 온갖 상상을 했다. 혹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이물질이 혼입되었다는 정보는 굉장히 중요했을 것이다. 일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고, 현재 조사중이며 빠른 시간 내에 답변을 줄 것을, 그리고 혹시 부작용 발생자가 있다면 대처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해야 했다고 본다.
2. 극도로 수동적이었다.
이건 백신 접종 이전부터 느끼던 바인데, "~~에 따르면" 이란 표현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직장 접종은 원래 6월부터 나오던 이야기였는데, 연기된 이유가 후생성에서 답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 말 한 마디에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데, 우선 학교측 접종본부는 후생성에 문의를 하면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직접 연락할 수 없는 라인이 없다는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집종이 연기되는 이유를 학교측은 모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후생성만이 뭔가를 알고 있는데, 아마 적당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알려왔을테지.
이번 문제에서도 그렇다. "후생성에 따르면 ~~하다"라는 내용과 함께, 자신의 판단 하에 접종을 원하는 사람은 오고, 취소할 사람은 예약 시스템에서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메일이 왔다. 수동의 극치였다. 나는 이미 맞았기에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 걱정하면 될 뿐이지만, 대기중이었다면 엄청나게 고민했을법한 문제다.
학교측 접종본부 뿐 아니라 후생성의 발표내용에도 충격을 받았다. 긴급 정보는 트위터에서 찾아보는게 빠른 편인데, 후생성 트위터에는 사건의 경위와 함께 혼입된 물질이 스테인레스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스테인레스는 페이스메이커나 임플란트에 사용됩니다' 라는 말이 덧붙혀져 있었는데, 그냥 드는 생각이 '어쩌라고' 였다. 괜찮을 거다 큰 부작용은 없을 거다 이런 말 한마디 더 붙히면 덧나나. 극도로 판단을 내리기 꺼려하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가장 정보를 가진 기관이 판단을 하지 않겠다면, 누가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인가. 페이스메이커 임플란트에도 사용되니까 맞아도 되겠지 하고 일반인들이 판단하고 맞으라는 소리인가 싶다.
사실 이번 같이 민감한 문제에서 접종을 재개하겠다는 말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그 판단을 먼저 알리고, 문제가 발생시에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있는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와이프는 아직 접종을 맞지 못했다. 직장접종 기회가 있었는데, 출장으로 무산되었다. 출장일이 겹친 것이 아니라, 접종 예약을 받을 때, 일시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출장과 겹칠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취소하면 9000엔을 내야 했기에 예약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차 접종을 2회로 나눴기 때문에, 충분히 맞을 수 있는 일정이었다. 도대체 뭐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3주째 확진자가 2만명을 웃돌고 있다. 병상은 가득차 코로나에 걸렸어도 집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임산부는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집에서 출산 시도중 아이를 잃었고, 그 와중에 한 연예인은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에 대중들은 분노하고 있다. 누군가의 입원치료가 분노가 되어버린 사회가 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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