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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생각] 혐오를 부추기는 사회

by 죠옹 2018. 12. 4.

 가치 판단은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가치 판단의 내면에는 늘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뜨뜨미지근한 가치 판단은 소모적이다. 우리의 역량은 여러 가치 속에서 늘 고민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대체로 좋다/나쁘다 식의 잠정적 판정 또는 보류를 일삼는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애매한 고민을 지속하기 보다는 목적을 지닌 행위를 추구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프레임은 참 편리하다. 애매한 경계에 있기보다는 한쪽의 프레임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나의 성향을 구체화 시키기 편리하며, 이러한 선택은 향후 나의 행위에 있어 뚜렷한 목적 의식을 부여한다.

 문제는 이러한 프레임의 선택의 결과, 점점 본디 고민하던 가치 판단 문제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편향되기 쉽다는 점에 있다. 한 프레임에 귀속 되는 순간부터 나의 행위는 다른 프레임에 속한 자들의 행위와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의 쟁점은 본래 고민하던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어느 쪽이 승리하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사회적 합의에서 집단 지성이 유리한 경우는 개개인의 독립적 판단이 이루어진 경우이다. 예를 들면, 저 사람 키가 몇cm야? 라고 물었을 때 100명이 관찰자가 각각 적어낸 답의 평균을 구하면 답에 근사한 결과가 얻어진다. 하지만, 크다/작다 라는 프레임이 갖추어져 서로를 맹공하는 구도가 이루어지면 이루어질 수록, 100명의 관찰자가 적어낸 답의 분산은 커지고, 한 쪽이 승리라도 한다면 그 쪽으로 편향된 결론이 내려진다.

 그래서 우리는 본래 고민하던 가치 판단이라는 주제로부터 벗어나면 안된다. 끊임없이 각자 고민하고 주변 의견을 논리적으로 수렴하는 태도를 갖추지 않는다면, 프레임이라는 생명체는 그 규모를 확장하며 상반되는 두 프레임은 점점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는다.

 사실, 이런 삶은 고달프다. 생각할 거리가 많고 소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개개인이 고민하기 보다는 집단적으로 뭉치는 편이 동료로부터 안정감을 얻으며, 프레임이 제공하는 신념은 내 행위에 강인한 목적 의식과 당위성을 부여하고, 삶의 원동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의 프레임에 속해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의 소모가 사회적 소모로 이어진 것일 뿐, 오히려 합리적 선택을 막는 장애물이 되기 쉽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상반된 프레임은 서로를 용서할 수 없다. 두 프레임은 끊임없이 상반된 두 결과를 기점으로 그 덩치를 불려나가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언론은 본래의 가치 판단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는 두 프레임 간의 충돌에 집중한다. 그 편이 선정적이며 보는 이들의 관심을 일으키기 좋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을 통해 새로 유입된 가치 판단자들은 보통 한쪽의 프레임을 선택하게 된다. A가 B에게 못된 짓을 한 뉴스를 보고 B에 유입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 A에 유입되거나 하는 식이다. A와 B가 본디 마주했던 가치 판단 문제에서 그 모두가 벗어나 소모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이렇게 사회는 혐오를 부추긴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립 구조를 통해 정치 생태계를 유지한다. 그렇지 않은 정당과 중도적 성향의 정치인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이 주어지지 않고, 관심이 주어지더라도 그 행보에 대한 양 정당의 끊임없는 비판과 순간적 가치 판단의 실수로 인해 매장되기 십상이다. 항상 한 가치 판단 문제에 대해 두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은 좋은 점이지만, 그를 넘어서는 서로에 대한 비난과 인물 중심적 인기투표는 우리를 올바른 가치 판단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만든다. 

 극단적 페미니스트와 남성도 중요한 문제이다. 여성인권 신장과 양성평등을 요구하던 페미니스트들 중 극단적인 일부는 어느 순간부턴가 남성을 적으로 두기 시작했다. 이들의 여성 인권 신장과는 별개로 남성에 대한 혐오로 그 생태계를 유지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동일범죄 동일수사, 타인에게의 탈 코르셋 강요, 인터넷 좌표를 통한 사이버 테러와 같은 행위는 더 이상 가치 판단의 문제에서 벗어나 범죄 행위에 가깝다. 갈수록 심해지는 극단적 활동은 또 다른 혐오를 불러 일으키며 새로운 충돌이 예상된다. 이 혐오 속 어디에도 본래 판단하고자 했던 문제는 없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개개인의 독립적 판단과 논리적 의견의 수용이 필요한 시기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복잡한 가치 판단에 있어서 한 가지의 확실한 답은 없다. 내 의견이 조금 더 논리적이라 하여 그렇지 않은 의견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수 많은 의견들이 독립적으로 존중 받고, 합의된 판단 속에서 선택 받지 못한 판단에 대한 관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항상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야, 그러한 의견들이 논리적 토론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인정해나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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