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연장을 신청하는 날은 하루를 날리는 날이다. 일단 접수를 하고나면 근처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몇 시간(대부분 반나절 이상) 걸릴지 몰라 다른 일을 넣어둘 수 없다. 덕분에 근처 카페에서 로빈 던바의 '프렌즈'를 읽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글로 남겨본다.
마음 상태 동사(mindstate)라는 게 있다고 한다.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로, 사람은 마음의 상태가 반복적으로 쌓인 문장을 구사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의 예를 다르자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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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 바라는 것과 반대되는 일을 내가 하려고 한다고 당신이 추측하는 이유를 내가 궁금해한다고 당신이 믿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로빈던바, 프렌즈,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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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게 표시한 마음 상태 동사가 총 6개로 각기 다른 6개의 마음 상태(의도)가 반복된 '6차 의도 선언문'이다. 하나의 문장으로 들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은데, 보통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대략 5차 언저리의 마음상태를 이해하고 구사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러한 능력이 모델링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를 '정신화'라고 한다고. 정신화는 단순히 기억 뿐만이 아닌 계산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데, 각기 다른 마음의 상태에 대한 추론 및 서술, 즉 모델링 과정이 나를 포함 여러 화자의 관점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엄청나게 많은 계산량을 요하기에 '생존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큰 용량을 가진 뇌를 필요로 한다'는 게 '사회성이 뇌의 크기와 상관되어 있다'는 사회적 뇌 가설의 주장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 모델이 업데이트 되는 과정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농담'이라고 하는데, 책에는 이러한 예가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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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농담: 공항에서 '혹시 모르는 사람이 뭔가를 주고 가진 않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제가 아는 사람들도 저에게 아무것도 안 주는데요.'
5차 농담: 한 소년이 이발소에 들어서자 이발사가 다른 손님에게 귓속말을 한다.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아이가 왔군요. 제가 증명할 테니 잘 보세요' 이발사는 한 손에 1달러 지폐를 들고 다른 손에는 쿼터 동전 2개를 들고서 소년을 불러 이렇게 묻는다. '얘야, 둘 중에 뭘 가질래?' 소년은 쿼터 동전 2개를 받아 가지고 나간다. '제 말이 맞죠?' 이발사가 말했다. '저 아이는 늘 저래요!' 손님이 가고 나서 이발사는 아까 그 소년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다. '얘야! 하나만 물어보자. 아까 왜 1달러 지폐 말고 동전 2개를 받아 갔니?' 소년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으며 대답한다. '제가 1달러를 선택하는 날이면 이 게임이 끝날 테니까요!'
[로빈던바, 프렌즈,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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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농담에서는 화자의 마음을 추론하면 되지만, 5차 농담에서는 화자 외에도 소년, 이발사, 손님의 생각을 추론할 필요가 있다. 복잡도는 다르지만 마음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외의 업데이트에 즐거움을 느낀다. 즐거움이란 일종의 보상이기에, 우리는 복잡한 마음상태를 학습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에게 N개의 마음 상태를 포함한 'N차 농담'을 제시하자 5개 까지는 마음 상태가 늘어날 수록 더 높은 점수를 줬다는 점이다. 5개를 넘어가면 이야기의 맥락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하는데, 가능한 범위라면 더 많은 마음 상태를 포함하는 경우에 더 흥미를 느꼈다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위의 예제에서 나는 2차 농담이 더 재미있었는데, outlier인걸까)
인공지능을 인간의 범주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건 개발의 의도나 사용자의 목적에서 봤을 때 의미 없는 시도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정신화라는 모델이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말을 쓰다 보니 이 대상의 마음을 모델링 하려는 회로가 작동해 버리고 만다. 언어라는 걸 사용하는 주체가 '사람' 뿐이었으니, 굳이 대상을 구분하여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익히기엔 아직 시간이 불충분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위의 5차 농담을 ChatGPT에게 물어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자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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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야기 자체가 놀랍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발사가 소년을 멍청하다고 말한 후에, 그에게 1달러 지폐와 쿼터 동전 2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을 한 것으로 보면, 소년이 1달러 지폐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쿼터 동전 2개를 선택합니다. 이후 이발사가 이유를 물어보면, 소년의 답변은 예상치 못한 반전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야기의 흥미를 더해줍니다.
둘째,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달합니다. 소년은 단순히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서 쿼터 동전 2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이득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이발사의 예측을 깨트렸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상황에서도 장기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흥미로운 동시에 가치 있는 교훈을 전달하는 좋은 예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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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결과라니, ChatGPT란 친구는 5차 농담에 등장하는 인물의 마음 상태를 추측하거나 해석하는 보편적인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농담을 이해하며 즐거움으로 보상하는 메커니즘이나, 인공지능이 예측 손실을 줄이는 과정으로 학습하는 메커니즘이나 거칠게 보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로빈 던바가 만든 N차 농담의 5 이상의 더 깊은 농담까지를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모델은 더 높은 사회성을 지닐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사회성이라는 것 마저도 다시 인간의 차원에서 재해석 되어야 하는 것인걸까.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고민은 의외로 가능성 보다도 한계성에 주목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보면 우리가 더 인간처럼 느끼는 인공지능도 더 큰 모델 보다도 더 제한된 학습과 소통을 하는 모델일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요즘 뭐 재미있는 이야기 들으면 인공지능이랑 연관지어 생각해 보는 쓸데 없는 짓을 하는데, 이 또한 내 안의 강한 모델링 욕구라는 본능이 작용한 결과 같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해야 할 일에 몰두하지 못하는 요즘이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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