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흥망성쇠에 대해 생각해본 것에 더해 인류의 흥망성쇠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책 '스케일'에서 언급한 기업은 죽고 도시는 살아남는 이유는 지속적인 혁신의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일반적인 기업은 혁신을 통해 성장하고 안착하지만, 이내 혁신이 담보하는 파이 규모에서 성장은 지체 되고, 또 다른 혁신을 내세운 기업에 의해 쇠퇴기를 걷는다. 도시는 사람이 효율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반 시설을 제공하며 사람을 끌어모으고,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계속해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와 같은 이치는 사람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는데, 사람 개개인 또한 성장을 거친 뒤, 정체하고, 쇠퇴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태어나는 인류는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룩하고, 인류의 발전은 끝 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럴까 지수적 성장을 이룩해온 인류사 속에서 혁신은 필수 조건처럼 느껴진다. 혁신이란 단어가 지니는 참신한 느낌이 무색하게도 혁신은 인류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 되어있다.
혁신을 기본 소양으로 갖춘 인간의 무리는 그렇지 않은 인간의 무리에 앞선다. 자원 경쟁에서 유리해지고 여분 자원으로 문화를 생성해낸다. 때로는 상하 종속 구조의 지배 관계를 맺기도,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기도 한다.
혁신은 단순히 불편을 극복하려는 목적을 넘어 생존을 위한 기본 소양이 되고 있다. 현대인의 삶이 피로한 이유이기도..
어린 나이에 읽어 꽤 충격으로 남은 책 중에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저)가 있다. 주인공인 호랑나비의 애벌레는 잎을 먹다가 삶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모험을 떠나고, 하늘 위 구름 위까지 뻗어 있는 애벌레 기둥을 발견하고는 다른 애벌레들과 함께 열심히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남을 짓밟으며 꼭대기까지 오른 애벌레는 구름 위 정상에 도달하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내려와 나비가 된다.
어쩌면, 혁신의 형태가 애벌레 기둥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 닫힌 계에서 흥망성쇠는 부정할 수 없는 결과이다. 성장의 한계는 계가 지닌 양분에 제한된다. 인간은 문명과 자손을 통해, 사회는 기업과 도시를 통해 혁신을 지속해 왔지만 그 한계는 우리의 양분인 지구에 있다.
지구는 항상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어 오며, 인류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인류의 활동은 지구의 항상성에 영향을 미칠 만큼 성장해왔다. 이제까지 수많은 혁신으로 이룩해온 성장은 침체되고 쇠퇴해야 할 시기에 있다.
이에 따른 많은 마음가짐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를 기반으로 성공을 이루었던 체계는 제재 받게 될 것이며,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이 놓여야 할 것이다. 성공적으로 성장을 정체 시키고, 지구와 함께 살기 위한 방향으로의 혁신에 보상이 주어지는 체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거대한 것은 지속적이다. 모래알은 막을 수 있지만, 산사태는 막을 수 없다. 산사태처럼 거대해진 지속 성장에 익숙한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침체기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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