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수술로 부터 13일이 지났다. 수술 후 일주일 째인 29일 퇴원하였으며, 현재는 수술 부위에 약간의 통증을 제외하고는 거의 제 상태로 돌아왔기에 조금이라도 기억이 남아있을 때 후기를 작성해본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나 개인을 위해 남기는 글이지만, 기부를 결심하신 분들이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읽고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직시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능한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써본다. 수술은 서울 아산병원에서 진행했고, 준비는 2019년 9월부터 시작하여 1,2차+추가 검사까지 약 5개월이 걸렸다. 글은 수술 과정에 초점을 맞춰 작성했다.
하루 전
공여자는 하루 전, 수혜자는 이틀 전에 입원하여 수술 전 준비에 들어간다. 입원 수속을 하며 환자복과 환자 식별 팔찌를 착용한다. 수술에 필요한 혈관을 팔에 잡아주면서 피검사를 실시한다. 이 때 바늘이 두꺼운 편이라 뻐근한 느낌이 있는데, 점점 익숙해진다. 피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수술부위 제모와 관장을 실시한다. 나 같은 경우는 아침 7시 반 수술이었고, 관장약을 저녁 8시에 마시고, 좌약을 새벽에 투여 받고, 새벽 내내 설사를 했다.
수술 전날이고 빈 방이 없어서 처음엔 VIP룸이 배정되었다. 가격은 100만원대.. 병원에서도 부담스러운걸 아는지 4시까지 대기해보자는 이야기르 했고, 오후 4시에 고급 1인실에 해당하는 패밀리 룸에 배정 받았다. 가격은 50만원대. 패밀리룸으로도 가격대는 충분히 부담스러웠지만, 결론적으로는 수술 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당일 - 수술 전
수술 전 속옷을 벗고 환자복을 착용한다. 어머니(수혜자)가 먼저 수술실로 이송되었고, 나는 15분 쯤 후에 데리러 왔다. 이송담당 직원분이 침대로 이송해 주시는데, 솔직히 무서웠다. 수술실 앞에는 대기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와 누나는 잠깐 입구에서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다고 바로 수술실은 아니고, 여러 수술 관련 방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을 조금 지나면 조금 따뜻한 느낌의 대기 공간이 나타난다. 내 옆으로도 대기중인 분들이 2분 정도 계셨고, 5~10분정도 대기했던 것 같다.
후에 이름이 불리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지문 검사를 한다. 지문은 2차 검사 때 국가 승인 관련 서류 작성을 하며 등록하는데, 그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문검사를 마치고는 수술실로 향하게 되는데, 수술 담당 간호사 분이 바로 옆 방을 가르키며 어머니가 있는 방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바로 옆 방인데 볼 수 있게는 되어 있지 않고, 꽤 큰 문이 닫힌 채로 있었다. 아마 절제한 간이 저 문을 통해 이동하겠구나 싶었다.
수술실에 도착해서는 수술 침대로 이동을 한다. 이 때 상의 환자복을 탈의 하고 눕는데 공기가 차다. 두껍고 묵직한 이불을 발 부터 배까지 덮어주는데, 이게 꽤 안정감이 들게 해준다. 수술을 준비하는 의료진 분들은 반팔을 입고 계시는데 안추울까 싶었다.
수술 침대에 누워서는 오른 팔을 뻗은 채로 고정하게 되고, 왼팔은 자연스럽게 내린 상태에서 팔목 보다 조금 윗 부분을 끈으로 둘러 엉덩이 밑으로 끈을 고정한다. 즉 오른팔 왼팔이 못움직이는 상태가 된다. 이 때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고 조언해주신다. 7시간 정도 이상태로 수술이 진행될테니. 그리고는 수술대를 평행으로 맞추는 작업을 하신다. 모든 과정 중간중간에는 내 이름과 생년월일, 내 팔에 채워진 환자 식별 팔찌를 계속해서 확인한다.
곧 마취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인사하신다. 물어볼게 있는지 몸 상태는 어떤지 물어봐 주신다. 그리고는 산소호흡기 같은걸 입에 대고 "이건 그냥 산소입니다~ 숨을 크게 쉬어보세요" 라고 하신다. 여러 후기를 보며 10부터 새어 보라는 분들도 봤고, 이것 저것 자연스러운 대화를 해주신다는 분들도 봤는데, 나는 어떤걸 물어보시려나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코끝에 좀 찌릿한 향이 나면서 기억이 없다. 페이크 였을까?ㅎㅎ 여튼 두려움이라곤 1도 못 느끼고 수술에 들어갔으니 좋았다.
수술 후 당일
갑자기 막 주변에서 간호사 분들이 소리를 지르신다. 몽롱해서 기억은 잘 안나는데 "이종혁님 정신차리세요!!" 이랬던거 같다. 그리고 막 지금 상황을 큰 소리로 설명해 주시는데 잘 못알아들었다. 숨을 계속 쉬라고 하고, 자면 안된다고 계속 소리를 지르신다. 이 상황이 좀 힘든게 계속 잠에 든다. 꾸벅꾸벅 졸리듯이 계속 잠을 자려고 하는 나와 깨우려는 사람의 대결이다. 몽롱함에 밀려서인지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엄청 추워 입을 덜덜 떨었던 것 같다. 그 상태에서 침대에 실려 간호사 분들이 많은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나중에 이곳이 입원 동의 치료실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실에는 아버지와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은 보통 6~10시간 소요된다고 하는데 나는 7시간 걸렸다고 한다. 간호사 분들은 내가 자지 않게 계속 깨우시고, 누나와 아버지에게 내가 자지 않고 심호흡 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신다. 이 때도 엄청 추운데 아버지와 누나가 다리를 주물러 줘서 금새 몸이 따뜻해졌다. 졸음에서 깨려고 노력하면서 계속 심호흡을 한다. 1시간 정도? 1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산소포화도와 심박을 체크하는데, 가끔 무호흡이 길어져서 산소포화도가 낮아지면 경고가 울리고 잠에서 깨고 심호흡 하고 이런 과정이 계속 되었다.
아, 그리고 목이 아주 마르다. 그런데, 수술 후 하루 동안은 물을 마시면 안된다고 해서, 거즈에 물을 적셔 입 주변을 닦는 정도로 버텼다.
사실 이 때 기억이 다 몽롱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 속에서 일어난 일 같다. 통증이 많이 있지는 않은데, 콧속으로 위까지 삽입한 관이 숨쉬고 침삼킬 때마다 좀 아픈 것이 걸리는 정도 였다. 주사바늘은 오른쪽 팔에 하나 목에 하나가 잡혀있고, 코에는 산소관과 위와 연결된 관이 연결되어 있다. 배에는 관이 3개가 나와 있어 플라스틱 주머니와 연결되어 있다. 뱃 속 상처부위의 피를 뽑아내기 위한 관이라고 한다. 소변줄도 달려 있는데 이물감이 좀 있는 거 말고는 불편함은 없었다. 아, 이상한 점으로는 수술 때 고정해 놨던 왼쪽팔에 근육통이 있다. 수술 때 자면서도 힘을 주나? 아니면 오래 고정해둬서 그런건가? 이유는 모르겠다.
목 혈관 쪽으로는 여러 약이 투입되고 있다. 혈관이 두꺼워서 인지 한꺼번에 많이 넣어도 되나보다 싶었다. 그 중에는 펜타닐(Fentanyl)이라는 진통제가 있는데, 버튼이 달려 있다. 고통을 느끼면 버튼을 누르고 소량이 투여되는 방식이다. 한번 투여된 후에는 15분? 동안 재투여가 되지 않는다. 마약성 진통제라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버튼을 누른 횟수는 약이 담긴 케이스의 디지털 판넬에 표시된다. 첫 날 나는 펜타닐을 한번도 누르지 않았다. 간호사 분들이 한번도 안누르셨다고 놀라 하시고, 누나는 무통의 사나이냐고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몽롱해서 그런지 아프다 힘들다 이런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수술 후 2일
둘째날 역시 좀 몽롱하다. 그래도 대화도 좀 하고, 심호흡 운동과 공불기 운동을 좀 한다. 공불기 운동은 사실 부는 운동이 아니라 빠는 운동이다. 숨을 다 내쉬고 나서 빨아들일 때 기구 내에 위치한 공이 떠오르게 된다. 공빨기 운동보다 공불기 운동이 어감이 좋아서 그런가?ㅎㅎ 어쨋든 정식명칭은 공불기 운동이다.
나는 수술 전 3개를 다 들어올리고도 10초 정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간호사 분이 폐활량이 좋으시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런데 수술 후에는 1개, 겨우겨우 2개를 들어올리는 수준으로 약해져 있었다. 장기간 수술로 인해 폐가 쪼그라 들었고, 이를 펴주기 위해 필요한 운동이 심호흡과 공불기 운동이다. 이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쪼그라진 폐 사이사이 공간에 물이 차서 이를 빼주는 시술을 또 받게 된다고 해서 열심히 불었다(빨았다). 어머니는 수술 후 정신 차리실 때까지 시간이 좀 길으셨는지 폐에 물이 차서 구멍을 뚫고 물을 빼는 시술을 받으셨다.
이 날은 코에서 위로 연결된 관과 소변관을 제거한다. 약간 찌릿찌릿한데 참을만하고, 빼고나서 후련함이 너무 좋았다.
수술 후 2일(저녁) - 3일(오전)
중요한 파트여서 따로 뺏다. 둘째날 저녁 부터는 고통이 좀 몰려오기 시작한다. 상처부위가 좀 찌릿찌릿 아파오고 몸을 움직일 때 고통이 있다. 정신도 몽롱함이 좀 가셔서 인지 고통이 조금씩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이 때부터 펜타닐 진통제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에 20회? 정도 기록되어 있었으니 밤새 눌렀다는 소리다. 이 날은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멍 하니 진통제 버튼만 누르면서 밤을 샌 것 같다.
그렇게 밤을 새고 오전에는 정신이 좀 피폐해져 있었다. 속이 좀 매스꺼워 지기 시작하고, 짜증을 많이 부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피폐해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좀 추상적인데,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면 병원이 갑자기 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눈을 감으면 막 해골 좀비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잔상으로 남는다거나, 눈에 보이던 물체의 형상들이 갑자기 다르게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하면서 좀 구역질 나면서 몽롱한 느낌이다. 처음에 간호사분이 펜타닐 진통제 사용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그래도 고통이 심하시면 알려달라고 말해줬던게 생각났다. 그래서 말씀드렸더니 목 혈관으로 다른 종류의 진통제를 투여해 주셨다. 이건 일정 시간에 한번씩 처방 가능한 진통제라고 하셨다. 이걸 맞고 나서 30분이 지났나? 고통이 확 가라 앉았다. 이제 좀 살겠다 싶더라. 역시 다 차선책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었다.
수술 후 3(오후) - 5일
이 날은 오후부터 정현이가 간병을 하러 비행기 타고 와주었다. 2박3일로 귀국하는데, 내내 간병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가장 힘든 일정이 될 줄이야ㅠㅠ
둘째날이 수술부위 통증에 힘들었다면, 셋째날부터 다섯째날은 메스꺼움과의 싸움이다. 통증은 진통제를 맞으면 어느정도 가라앉아 버틸만 했지만, 메스꺼움은 정말 힘들었다. 이 날 부터 미음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음식 냄새만 나도 구역질이 나서 미음을 제외한 반찬은 뚜껑도 안 열었고, 미음은 2-3 숟갈 먹고 말거나 아예 음식을 안먹기도 했다. 보통 기증자는 메스꺼움이 가장 힘들거라고 들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진통제를 너무 몰아서 투여 한 것과 함께 시너지 효과가 난 것 같다.
간호사분들께 메스꺼워 힘들다고 하면 목주사로 약을 투여 받는다. 메스꺼운 상태여서 냄새에 민감한데, 목주사로 놓아도 약의 향이 나는 것 같다. 약간 민트 향이 나는데, 이마저도 메스꺼워 힘들었다. 셋째날과 넷째날에는 새벽에 참지 못하고 구토를 했는데, 배에 있는 상처 부위가 아파 시원하게 토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좀 게워내면 편해져서 잠시 잠들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심한 숙취가 3일 동안 지속된 느낌이었다.
정현이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해주려 했는데, 나는 매 초 구역질을 참았기 때문에 대답도 잘 못해줬다. 꾹 구역질을 참고 한 말이 겨우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부탁할게..' 였다.
넷째날에서 다섯째 넘어가는 날 밤에 뜬금없이 사과가 먹고 싶어졌다. 넷째날은 종일 밥을 한 입도 안댔고, 영양제를 맞았는데, 뜬금없이 사과가 먹고 싶은 것이었다. 정현이를 깨워 부탁햇고 지하1층 편의즘에서 사과를 사왔다. 많이는 먹지 못하고, 1조각을 겨우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후기를 보면 사람마다 식욕을 돋군 음식이 파인애플, 망고 같이 다 달랐는데, 나 같은 경우는 사과였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밥을 조금이라도 먹게 되었다. 주전부리도 좀 먹게 되었고, 이제 살겠다 싶었다.
정현이는 그렇게 나를 살려주고는 다시 돌아갔다. 다섯째날 밤은 좀 낫겟다 싶어서 아버지를 집에서 쉬시라고 하고 혼자 보냈는데, 많이 힘들었다. 정현이가 정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걸 새삼 깨달으며 밤을 샜다.
수술 후 6 - 8일
그동안 아팠던게 다 뭐지? 싶을 정도로 심각하게 괜찮아진다. 음식을 먹고 난 다음이나, 복도 걷기 운동을 한 후에 갑자기 식은땀을 많이 흘리곤 했는데, 간호사 분이 이상 증상은 아니라고 너무 심하면 말해달라고 하셧다. 또 이 때부터는 밥을 꽤 많이 먹기 때문에 배변이 큰 이슈로 떠오른다. 가스를 배출하고 대변을 보게 되면 알려달라고 간호사 분들이 이야기 하신다. 장이 활동하지 않다가 활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식사양이 적었다가 늘어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변비로 고생하게 된다. 인생에서 변비로 고생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한 고통이었다.
위의 수술 후 경과에서 다 적지 못했는데, 수술 후 매일 엑스레이 검사와 피검사를 한다. 수술부위에 이상이 없는지, 간수치에 이상은 없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또, 상처부위에서 뽑아낸 배액관 3개도 매일매일 수시로 소독해주고 피가 찬 정도를 체크해 준다. 상처부위에 피와 진물이 차면 상처가 아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빼주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3일 정도 지난 후로는 배액관에 연결된 주머니를 거의 비우지 않았다. 상처가 빨리 아물었나보다. 제일 적게 나오는 관부터 한개씩 제거하는데 뺄 때 관이 뱃속을 미끄러져 나오면서 조금 찌릿시릿한 기분나쁜 고통이 있다. 첫번째 배액관은 금방 쑤욱 하고 뽑혔는데, 둘째 배액관 셋째 배액관은 꽤나 길게 뱃속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둘째 배액관을 뽑고 나서 갑자기 뱃 속이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장이 운동하는 것을 확 느꼈고, 그날 저녁에 토끼똥 같은 첫 배변을 보았다. 배액관이 변비와 관련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장이 움직이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느껴본건 인생에 처음인 것 같다.
수술 후 6일째는 조영제를 투여하는 CT촬영을 한다. 수술부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촬영이다. 7일날은 마지막 배액관을 뽑았고, 자기공명담도촬영을 한다. 정맥으로 자기공명으로 촬영 가능한 물질을 투여하여 간에서 생성된 담즙이 담도를 통해서 십이지장으로 제대로 분비되는지, 중간에 새는 곳은 없는지 촬영하는데 30분 간격으로 촬영하여 담즙의 이동 양상을 촬영한다. 이것이 마지막 검사다. 여기서 통과 하면 퇴원하게 된다.
되돌아보며
개복 수술은 처음이었기에 두려움도 컸고, 수술 후 증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었던 것 같다. 힘들어 할 때 옆에서 정현이가 다들 겪는 증상이라고,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는데 그 말이 맞다. 결과적으로 수술 후 일주일 만에 퇴원 했고, 지금은 힘들었던게 다 추억이었던거 마냥 괜찮다. 수술부위에 약간의 위화감과 통증이 있는것만 빼고
간호사 분들과 의사 분들 정말 바쁘시다. 아픈 사람이 부리는 짜증도 다 받아주시고, 불편한점을 이야기 하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하신다. 참 감사했다. 정말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이라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다. 아픈 사람이 살아서 나가는 곳이다. 이런 기술과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있고, 이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크게 감사하다.
어머니도 나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어머니의 경우 나보다는 트러블이 좀 있긴 했지만, 그동안의 어머니의 건강상태를 고려해보면 선방하셨다 싶다. 어머니는 아직 퇴원까지 1-2주를 보고 계신다. 나와서도 꾸준히 관리를 이어나가셔야 하니 끝난건 아니지만, 잘 이겨내시리라 생각한다.
수술 후 2일 째부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면회가 금지되었다. 간병인 1인만 출입할 수 있게 입출구가 봉쇄되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면회를 못오시고 전화로 메시지로 연락을 주셨다. 큰 힘이 되었다. 감사하다.
수술 전에는 간병인이 뭐 필요하겟어? 싶었는데 정말 필요하다. 간병인이 없으면 손 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아픈 것도 좀 징징대고 대화할 상대도 있어야 힘들고 무료한 병원 생활이 좀 버틸만 하다. 종일 수발들어주신 아버지, 누나, 그리고 제일 힘들 때 같이 있어준 정현이 참 고맙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다수는 간 기증과 관련된 분들이실테니.. 이 분들을 위해 몇마디 남겨본다. 간 기증을 결심할 때는 아직 두려움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머니를 위해 당연히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수술 후 10년 내 기준으로 성공률 90퍼센트 이상을 자랑하는 아산 병원이 주는 신뢰감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수술이 주는 두려움과 고통은 짧게 오던지 천천히 오기 시작하던지 한 번은 오게 된다. 그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직면하고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고자 꽤 주관적이지만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적어보려 했다. 수술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읽어보고 이겨낼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다. 짧고 강렬히 찾아오지만, 몇 일 안되어 추억이었던 것 마냥 지나간다.
간을 기증하는 입장이었지만 큰 사랑을 느꼈다. 고마우면서 미안해 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누나. 수술 준비 때부터 간병까지 옆에서 같이 힘들어 해주고 응원해준 정현이. 멀리서 응원해준 친구들 선후배님들 친척분들과 어머니 친구분들. 내가 오히려 더 감사함을 느꼈다. 내 인생 한창 바쁠 시기에 찍힌 기분 좋은 쉼표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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