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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관계의 과학 - 김범준, 인과율과 목적론

by 죠옹 2020. 6. 18.

 <관계의 과학>의 마지막 장 '시간은 우리 앞에 어떻게 존재할까?'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이 장에서는 물리학의 결정적 사고 방식이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양자역학과 비선형 시스템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특히 감명 깊었던 것은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미분 꼴과 적분 꼴의 방법에 얽힌 인과율과 목적론의 세계관이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자연법칙의 미분 꼴과 적분 꼴은 다음과 같다.


 '지금'에서 시작해 바로 다음을 구하고, 이를 새로운 '지금'으로 해 그다음을 또 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시간을 잘라 조금씩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뉴턴의 고전역학이다. 이처럼, 고전역학에서 뉴턴이 택한 사고의 틀은 시간을 잘게 나누는 '미분'을 이용한다.  -305p

 적분의 꼴로 주어지는 어떤 양을 생각하고 이 양이 가장 작은 값을 갖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전체 경로를 한 번에 생각하는 거다.  -306p


 그리고, 이 방법이 지닌 세계관을 원인에서 결과로 이어지는 '인과율'과 어떤 목적을 지니는 '목적론'으로 구분한다.


 우리는 현재 순간에서 바로 다음 순간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미분의 형태를 택해 사고하는 것에 익숙하다. 저 멀리 놓여 있는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지금 여기서 시작해 인과율의 단계의 사슬을 이어가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익숙한 미분 꼴의 사고 방식이다.

 <컨택트>의 외계인은 우리 지구인의 미분 꼴의 접근 방식을 오히려 훨씬 더 어려워한다. 외계인의 눈앞에서 미래는 과거와 동일하게, 수많은 가능성의 집합에서 적분 꼴로 주어진 어떤 양이 극값을 갖는 경로 전체의 형태로 이미 펼쳐져 있다.  -307p

 

 소설 <컨택트>을 읽지 않고 바로 영화로 접했다. 그래서 결말이 이게 도대체 뭐지 하면서 끝난 기억이 있다. 작가 테드 창은 인과율과 목적론적 세계관이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컨택트>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의 물리학자가 멈춘 곳에서도 테드 창의 소설이 묻는 질문은 이어진다. 과거에서 미래를 한 번에 관통하는 딱 하나의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 목적 함수를 갖느냐고, 미래를 과거처럼 기억해 미래에 닥칠 끔찍한 고통을 이미 알고 있어도 당신은 그 피할 수 없는 외길을 따라 걷겠냐고.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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