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능한 가장 무미건조하게 얘기해보자면 그냥 모델이다. 조금 더 살을 붙여보자면, 들어오는 자극들과 그에 대한 기억들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행동들이 정합성을 가지도록 체계화된 모델이다.
모든 모델들이 그렇듯, '나' 또한 일관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조금씩의 변화나 확장, 때로는 커다란 전환의 시점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도약을 하려면 디딤발이 있어야 하듯 '코어'가 필요하다. 뒤흔들리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 그런 것들이 모여 '나'의 재료가 된다.
예를 들면 신체소유감 같은 것이 있다. 감각적으로 느끼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이 감각은 '나'와 '내가 아닌 것'에 대한 최소한의 물리적 구분을 가능케 한다. 때로는 이 감각이 확장되거나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숙련된 사람이 도구를 마치 제 몸 다루듯이 다룬다거나, 나의 몸이 아님에도 내 몸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켜 반응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소유감은 주로 시각적 촉각적 피드백이나 근육의 감각에 의존하는데, 청각과 후각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들도 간혹 있다. 오감을 통한 감각적 통합이 신체적 소유감을 만들어낸다는 해석이 일반적인데, VR이나 각종 센서와 액츄에이터들이 등장하면서 이 감각을 확장시키거나 왜곡시켜보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도구의 개입으로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험이 가능해질까? 일부분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또 쉽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사회적인 관계가 있다. 사람은 보통 친한 사람을 중심으로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난 모두와 비슷한 시간을 만나. 난 모두에게 공평하게 시간을 할애해. 이런 사람은 거의 없다. 중요한 사람들과는 끈끈하게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이며 소통한다.
그러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나'를 더 단단히 만든다.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가 일치한다는 경험이 축적될수록 나는 더 객관적이게 되며 자신감을 얻는다. 자아정체감과 캐릭터가 형성되는 과정인데, 사회적 상호작용은 이를 더 성장시키고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사람들은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코어가 없는 약한 연결만 있다거나, 약한 연결은 없는 코어만 있는 사회망에서 살아간다면 사회적인 '나'는 경직되거나 형체가 불분명한 모델 이상으로 성장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진실이 있다. 진실은 변하지 않는 사실들에 붙는 이름이며,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들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많은 것들이 이런 진실들의 모음집이며, 이를 익히고 확장할 수 있는 논리적 방법들을 학문이라고 부르는 듯 하다.
많은 진실들을 숙지하고 확장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단단하다. 진실은 개인적으로 봤을 때나,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나 다름이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자아'라는 모델링의 확장된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능동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모델링 하는 과정에서 비롯한다. 나의 실패는 언제나 '나'라는 모델의 실패고, 나의 성공 또한 언제나 '나'라는 모델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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