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터 여럿이 만나는 모임에 대해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나면서 재미를 느끼는 건 축구가 유일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도 구석이 좋다. 구석에 가면 한 두 명 정도 말할 사람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게 좋다.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많은 사람들이랑 대화하려면 소재가 필요하다. 요즘 잘 지내셨어요? 뭐하고 지내세요? 따위의 이야기는 대여섯명과 나누기란 참 버거운 소재다. 뭐 시작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몇 번의 턴 내에 흥미로운 소재가 나오지 않으면 머지않아 끝나고 만다.
약간은 특이하다거나, 자극적이거나, 누구나 그에 대해 한 두가지 생각이나 감정을 갖고 있다거나 한 것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려면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던바 선생님의 마음이론에서는 한꺼번에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대략 5명 부근까지라고 보고 있다. 어떤 이야기에 오르내리는 인물이 5명이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그들의 심리 상태를 추측하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이는 부담이면서도 보상과 관련되는데, 예컨데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유머에서, 추측해야 하는 마음의 상태가 많을 수록, 더 큰 흥미를 느낀다는 식이다.
여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나눌 수 이야기는 자극적이거나, 공감의 정서가 작용하는 스토리의 4~5명 내외의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 지금의 나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술을 끊은 것도 큰 역할을 하는 거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거 같진 않던데, 많은 사람들이 밟는 인생궤적에서 조금 틀어진 것도 이유인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눌법한 이야기를 하는데는 오히려 글이 편하다. 시간제한도 없고, 양껏 상상할 수도 있고, 생각도 좀 느리고 말도 좀 느리니까.
그러니까 글이 사라지진 않을 거 같다. 나 같은 사람도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어딘가에 많이 있을 테니까.
한동안 그런 공간들을 찾아다녔는데, 얼마 전 머물러 있던 곳이 문을 닫았다. 커뮤니티는 좀 아쉽고, 블로그는 좀 외롭고..
내성적이면서도 관종이라.. 참 어려운 공식인데, 이를 만족할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프라인에서는 가능한 거 같은데, 온라인에서는 아직은 좀 힘들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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