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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엣지러너 - 사회의 가장자리를 달리는 사람들

by 죠옹 2024. 12. 31.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2077년 디스토피아 '나이트 시티'를 배경으로 한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1~2년 전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이트 시티'는 초거대 기업들이 높은 기술력을 통해 사회와 사람을 장악한 도시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력이 사회를 장악하는 방식이 단순히 공포와 같은 추상적인 통제가 아닌, 기술이라는 거대한 축으로 다른 모든 것들의 경계를 없앤 거의 완전한 통제에 가깝다는 점이다. 

나이트 시티에선 기술력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혹은 그럴 수 없는 사람으로 사회를 가르고, 기술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은 이를 기준으로 배분한다. 기술력은 나아가 사람의 신체의 영역까지도 침범한다. 더 좋은 기술력을 통해 만들어진 장비를 신체에 이식한 사람이 더 강하고 더 똑똑하다. 사회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라는 최소한의 물리적 단위까지 기술의 영역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력은 오로지 기술이다. 오직 기술력을 위해 살아가고, 오직 기술력만이 살 수 있게 한다.

겉모습은 복잡해 보이지만 그 속성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세상이다. 오로지 기술을 통해 강함을 획득하면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세상이다. 절대 악으로 보이는 기업도, 가끔 선으로 비추어지는 갱단과 일반 시민들도, 결국 기술을 통해 강함을 획득한다는 하나의 축으로 세계관이 정렬된다. 이런 세상에서 선과 악의 분간은 모호하다 못해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오직 한 방향으로 달릴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모습을 더 뚜렷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은 기술과 사회와 공명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 공명이라는 것이 어찌나 강한지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람인 것인지 거의 구분하지 못한 채, 온갖 것들이 뒤섞인 세계관의 1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누군가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주변에 보이는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가능한 거의 전부일 것이다.

나이트 시티는 사회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신체까지도 기술력과 자본이 침범한 세상이다. 그런 나이트 시티의 이야기는 사회와 사람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기존의 관념들을 뒤흔든다. 그것은 굉장히 기분 나쁜 경험이기도 하며 멀미가 날 정도로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뒤흔들리는 관념의 축들 속에서 날것의 모습을 한 '사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건 사회라는 관념적인 설명으로도 신체라는 물리적 실체로도 규정할 수 없는 오롯한 사람의 모습이다. 날것의, 취약하고, 끈끈하고, 잔인하고, 따뜻한 그런 사람의 모습은 불쾌하고 불편하면서도 반가운, 눈물나게 반가운 그런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제목의 '엣지 러너'는 사회의 가장자리(Edge)를 활주하는 사람들(Runner)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술과 자본이 장악한 세상에서, 사회가 정의한 영역의 가장자리를 활주하는 사람들은 '면'의 속성을 지니면서도 '선'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세상과 같은 문법으로 다른 영역을 개척하고, 또 무너뜨리려 한다.

이 세상에서 기억되는 방법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다

위 대사는 사이버펑크의 명대사이자 엣지러너의 가장 강력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사회의 가장자리를 활주하는 엣지러너들은 '면'이 아니라 '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지, 그러니까 어떤 모습의 '면'을 만들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어떤 '선'을 만들고 이어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들이 만들고 이어나간 '선'들이 결국엔 사회의 영역을 규정한다. 기술력과 자본이 완전히 장악한 세상일지라도 세상의 가장자리를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날것의 '사람'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세상(면)은 결국 그런 사람(선)들이 만들고 이어나간 영역이다.

 아주 먼 미래, 가장 강력한 디스토피아가 완성된 세상에서도 '사람'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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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고 나면 1000배 좋아지는 OST "I Really want to stay at your house".
 
https://youtu.be/KvMY1uzSC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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