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책 '휴먼카인드'를 읽고 있다. 내용도 번역도 훌륭해서 술술 읽히는 책이다. 읽다보니 문득 작가의 강연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TED에서 강연한 영상이 있었다. 강렬한 강연이었다. 밑에 내용을 정리해본다.
가난은 지적 능력에 영향을 준다. 일년 수당을 수확기에 몰아 받는 농부들의 IQ는 수당을 받기 전 보다 받은 후에 평균 14점이 높다.
가난은 생존과 직결한 문제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당장 먹어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시각은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가난한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교육과 같은 수많은 빈곤 퇴치 프로그램들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강연자는 '수영을 가르쳐주고 거친 바다에 던져넣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가난의 본질은 미래를 말살한다는 것이다. 정말 어지간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이 상황에서 교육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런 해결 방식은 이 시대를 상징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시하며, 증상만 치료하는 것.
강연자가 주장하는 빈곤 퇴치법은 당장 가난에 의해 좁혀진 시야를 해결해 주는 방법이다. 바로 돈을 주는 것이다.
캐나다의 도핀 시에서 있었던 4년간의 기본소득 실험에서 학생들의 성적은 향상되었고, 입원률은 감소했다. 가정폭력 사건은 줄어들고, 정신병을 호소하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없었다.
도핀 시에서는 역소득세로 기본소득의 비용을 충당했다고 한다. 빈곤선 이하로 떨어지면 소득을 채워주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의 추정치에 따르면 GDP의 1%인 1750억 달러 비용으로 모든 빈민을 빈곤선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아동 빈곤 비용으로 추정되는 연간 5000억 달러를 고려하면 손보다는 이득이 더 많다.
기본소득은 비단 빈곤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인재들은 가난을 피하고자 (밥 벌어먹고자) 자본이 원하는 일을 한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본인의 직업이 거의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심지어 자신의 직업이 존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한 수학천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세대의 최고 지성인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광고를 클릭하게 만들지를 고민하고 있다."
가난이 주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이들의 재능은 다른 그 무엇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제해결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와 함께, 무엇을 지지할 것인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는 우리가 지지하는 것으로부터 이끌려진 경우가 많다. 마틴 루터 킹은 "내게 악몽이 있습니다" 대신 "내겐 꿈이 있습니다" 라는 말로 변화를 이끌었다.
강연자의 꿈은 이렇다.
- 내 직업의 가치가 월급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고 내가 전파하는 행복의 양과 내가 주는 의미의 양으로 결정되는 미래
- 교육의 목적이 쓸모없는 직업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인 미래
- 가난하지 않은 삶이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받을 자격이 있는 권리인 미래
이렇게 강연을 마친다.
강연자가 주장하는 '멋진 미래'의 성공 여부는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사회의 규모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핀 시의 경우 처럼 기본소득 실험의 많은 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회에서 이루어 졌다. 작은 규모의 사회에서는 익명성이 낮고, 사회적 니즈가 공유된다. 호혜성이 작동하는 사회다.
같은 정책이 높은 익명성과 분산된 사회적 니즈가 있는 더 큰 규모의 사회에 적용 되었을 때는 호혜구조를 해치는 다양한 전략들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지닌 여분의 잠재력이 사회를 위해 흘러가기 위해서는 호혜성이 작동하는 단단한 기반 사회 구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문제는 사회 시스템이 지닌 top-down 방식의 정책이 bottom-up 방식의 이념과 함께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아무리 옳은 이념이라도 정해버리는 순간 옳지 않게 될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에 남은 점은 강연자가 말한 이 시대가 상징하는 해결 방식인 '근본적인 원인은 무시하며, 증상만 치료하는 것' 이었다. 과학적 문제 해결 방식은 실로 그 방식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허나, 정량적으로 알기 힘들거나 복잡한 부분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대상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정량적으로 알 수 있는 증상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빈곤 퇴치 프로그램에서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그렇다. 빈곤 아동의 학업 성취율이 낮으므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우리가 아는 수준에서 학업 성취율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학업 성취율이 낮은 근본 원인이 '빈곤'과 같은 환경이라면 교육 프로그램 그 자체는 본질적이지 못하며, 이로 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할 수 밖에 없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우울증에 대해 이것 저것 찾아보다 보니, 빈곤문제와 그 결이 같아 보인다. 우울증은 뇌 내의 신경전달물질에 불균형과 부정적 인지로 인해 정상적인 감정 상태로 돌아오기 힘든 상태를 칭한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해 부정적인 인지 과정을 교정하는 치료와 뇌 내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약물처방, 심한 경우에는 전극 삽입을 통한 치료가 이루어 진다. 실로, 이 방법들은 증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며, 환자들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고 정상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허나, 우리는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아니,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워낙 다양하고,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며, 제어할 수 없는 원인이라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의 환경적 요인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들은 우울증의 원인에 대한 조사를 한다. 경제적 요인, 신체적 요인, 환경적 요인, 유적적 요인 등 관련 논문은 참 많다. 허나 이러한 분석 결과들이 실제로 시행에 적용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원인이 아주 거대한 시스템이거나, 메커니즘이 뚜렷하지 못하다거나, 완전히 의외의 것이라거나 하는 식의 불분명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인에 대한 개입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현재까지 우리가 지닌 과학적 문제 해결 방식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개인', 그 안에서도 극히 일부의 것들에 대해서만 작동한다.
최근에는 긍정심리학의 등장과 함께 우울함을 치료하는 것 만큼, 좋은 감정 상태를 살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움직임이 있다. 강연자가 말한 '악몽'에 집중하기 보다 '꿈'에 집중하자는 관점에 가깝다. 복잡한 대상을 다룰 때에는 대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기 보다, 대상의 핵심 본질을 이끄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집안 곳곳에 얼음이 어는 것이 문제라면, 곳곳에 나타나는 얼음을 깨기 보다는 온도를 올리는 편이 더 근본적이며 효율적일 수 있다. 빈곤을 향한 강연자의 관점과, 행복을 향한 긍정심리학의 관점은 복잡성에 대해 같은 결의 해결 방식을 제시한다.
대상의 좋은 점에 집중할 것인가 문제점에 집중할 것인가는 그 중 어느 하나만 고를 수 없다. 복잡한 세상에서 둘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나며, 하나의 성공이 다른 하나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대상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완전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념적 성격을 지닌다. 역사적으로 유토피아를 향한 이념적 움직임은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 큰 변혁의 중심이 되어 왔고, 성공한 경우에는 큰 도약을 이루었다. 문제는 성공하지 못하였을 때 인데, 이 경우 발생한 부작용은 그 규모와 피해가 심각하다. 그래서 보통 이념적 개혁을 시도하는 자들은 위험하다고 받아들여지기 쉽다.
강연자도 비슷한 사정인 것 같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강연자는 보수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에게 꽤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을 경험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은 그 결이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자본이 노동을 앞서는 시대에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본의 흐름을 따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균등한 분배는 가진자는 더 가지고 못가진 자는 더 못 가지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현실 문제에 있어 가진자에게 더 징세하는 것은 큰 관심을 끄는 편이지만, 못가진 자에게 더 나눠주는 것에는 관심이 집중되지 못한다. 양방향에서 생각해보면 가진 사람에게 징세하는 만큼이나 못가진 사람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못가진 사람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것을 생소하게 느껴왔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아마도 부의 격차에서 느낄 수 있는 '불공정함'이라는 강한 인지과정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는 강하게 작용하지만, 내가 더 가진 경우에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 대부분의 사람이 빈곤 기준에 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못 가진 자에게 더 나눠줘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공론화 되기 힘들 수 밖에 없다.
많은 생각이 드는 강연이다. 강연자의 책인 '휴먼카인드'를 끝까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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